새로 어떤 게임을 시작하려고 할 때 내가 가장 시간을 오래 투자하는 부분은 아이디를 생성하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 마지막으로 고심하는 지점이다. 한번 정하면 (거의)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이름은 너무 중요하다. 물론 어떤 게임에선 13000원만 내면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살 수 있지만, 내가 원하는 유니크한 아이디는 이미 누군가에게 선점당했을 것이므로 13000원의 가치가 충분한 지는 잘 모를 일이다. 공짜로 이름을 바꿀 수 있기도 하다. 비윤리적인 아이디를 생성하면 GM이 마음대로 아이디를 바꾸는 벌을 내려 ‘불건전한소환사명123’같은 아무개의 이름이 되니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.

고심해서 아이디를 지었다고 해서, 모두가 나를 내 아이디로써 불러주는 것은 아니다. 대체로 나는 게임 속 직업이나 챔피언명으로 불린다. “라인하르트”, “잔나”, “사제”, “탱커” 등이 그렇고, 내가 사람들에게 익숙치 않은 영어 단어를 이용하여 아이디를 지었다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지칭을 위해 ‘영어’아이디를 가진 자 라는 것을 명시하여 “영어 사제”님이 된다. 하지만 이렇게 불리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.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, 이 이상 알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. 나와 한 팀이 되어 전투를 할 때 직업/챔피언명 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으면 나와 충분히 한 게임 플레이 할 수 있을 정도의 팀워크는 나오니까.

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두세판 더 플레이 하게 되는 경우, 그러기 위해 ‘친구 맺기’를 한 경우, 더이상 우리 관계가 랜덤매칭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닌 것이 될 경우 나는 드디어 내가 손수 지은 나의 아이디를 불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.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지나가는 챔피언1이 아닌 그 존재 자체로서 바라보고 대하게 된다. 나의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실존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. 바꿔 말하자면 나의 존재가 그 사람에게 인정 받은 상태가 된 것이다.

사람은 이름 짓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. 당장 나만 해도 지난 주에 새로 산 인형에 이름을 지어주었다. 블로그 챌린지 때문에 아무렇게나 쓴 이 글에도 제목이 달린다. 이 글을 쓰면서 마시는 커피에도 이름이 붙어있고 내가 서있는 길에도 을지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. 얼마전에 <놉>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UAP(Unidentified Aerial Phenomena)에도 각 인물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명명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.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은 이름 짓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,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상태를 회피하고 싶어서 이름을 짓거나 부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. ‘이름 따위 몰라도 괜찮은 상태’를 벗어나면,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결국엔 모든 것을 모른다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?

이름을 부르면 나는 그것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. 더 과격하게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만의 ‘어쩌구 콜렉션’에 하나의 이름을 더 새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. 어떤 면에선 그 이름으로써 그 대상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. (너무 과격하게 표현한 것 같지만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. 퇴고 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이대로 글을 계속 쓰겠습니다.) 그래서 당신과 나의 이름은 너무 중요하고, 그것이 불리는 사건은 엄청난 관계 형성의 시작이다.

김춘수의 <꽃>만 읽어도 알 얘기를 구구절절 썼다. (그렇지만 내 블로그니까 내 마음대로 아무 글이나 쓸 것이다.) 이번 한 주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한 한 주 였다. 내가 당신의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? 그 전에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? 그 전에 내게도 어떠한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? 나는 내 이름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. 내 이름이 신나라이건, 레오나이건, 우르르쾅쾅이건, 펭드비이건 상관없다. 당신이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그 사실이 당신과 나를 당신의 세계에 존재하게 만든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