사실 나는 “오늘 아주 담백한 음식을 먹었다”는 글을 보면 무슨 맛의 음식을 먹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. 맵고 짜고 달고 시고 고소한 음식은 언어로 표현되어도 내가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학습되었는데 담백하다는 말은 슴슴한 음식에도 쓰이고 산뜻한 음식에도 쓰여서(지금 당장은 두가지정도의 맛으로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여럿 사람들이 쓰는 걸 보면 내가 나열한 것 외의 맛도 담백하다는 표현 한가지로 하는 것 같다.) 내 안에서 어떤 특정한 한가지 맛이라고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. 그럼 사람마다 말하는 담백하다는 표현이 다른 맛의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인데, 그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표현이 어떻게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.

맛은 그럭저럭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이 있는 것 같아 ‘담백하다’는 표현을 먼저 예로 들어보았다. 감정으로 생각하면 더 어렵다. 아주 예전에, 누군가를 보고싶다는 말을 완벽하게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짧은 글을 썼다가 “당신도 참 불쌍한 사람이네요.”라는 댓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. 사물은 사물이라고 보고, 만지고, 맛을 보고 알 수 있는데, 보고싶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그 말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남긴 글이었다. 나의 보고싶다와 당신의 보고싶다가 같은지 알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,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. 아마 댓글을 단 사람도 나의 ‘이해하지 못한다’는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런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. 절대 댓글 단 사람 탓을 하는 것이 아니다. 그냥 언어가 왜곡할 수 밖에 없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을 뿐.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‘내가 내 애인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아?‘, ‘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됐어’ 같은 글이 올라오는 것만 봐도 내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같은 감정인지 언어 하나로는 표현이 어려우니까 올라오는게 아닐까.

요즘은 과일의 당도도 수치화 해서 라벨이 붙어 나온다. (심지어 그 과일을 먹어보지 않고도 측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더 놀랍다!) 맛처럼 감정도 수치화가 된다면 어떨까? 생각해보면 불완전한 표현이 우리를 오해속에서 더 서로의 감정에 푹 빠지게 만드는 장치가 아닐까. 보고싶다는 감정도 사랑한다는 감정도 수치화할 수 없고 당신과 나의 사랑이 같은 모양인지 알 수 없다. 어쩌면 말을 할수록 더 의심스러워지고 불안해질지도 모른다. 어쩌면 또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. 당신과 나의 틈은 언어로 가까이 붙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벌어진다.

사랑하는 나의 친구들 모두 나의 방식대로 사랑하고, 보고싶다.